(EP 05) 이렇게 하면 밑 빠진 독에 물붓기라고요?


“아, 이거 진짜 말만 들어도 뭔가 될 거 같은데요? 감정이입을 해서 실제처럼 말해 본다는 게 어떤 건지 나도 빨리 느껴 보고 싶어요. 그럼 이제 지금까지 코치님이 얘기한 것들 기억하면서 영어 문장을 무조건 외우면 되는 거죠?”



“맞아요. 영어 문장을 외우는 건 당연히 필수 중에서도 필수라고 할 수 있어요. 그런데 대사를 계속 반복해서 외우다 보면 어떤 현상이 분명히 나타날 거예요. 이제 그 현상이 무엇인지, 원인은 뭐고 해법은 뭔지만 알면 될 거예요.”



“알아야 할 게 또 있나요?”



“그럼요. 지금까지 말한 것 이외에도 영어 문장을 외울 때 알고 있어야 할 것들은 많아요. 우선 각종 문장을 내 것으로 만드는 1단계에서 꼭 나타나는 현상이니까 잘 들어보세요. 문장을 외우다 보면 점점 속도가 붙게 되는데 어느 순간 외웠던 것들을 다시 말해 보면 저절로 입에 붙어서 나오게 될 거예요. 그런데 사실 그 때 의미를 생각하지 않고 기계적으로 암기된 내용이 튀어나오곤 하거든요. 문장이 기계적으로 암기되지 않도록 꼭 주의해야 해요.”



“기계적 암기? 그냥 의미를 생각하지 않고 말을 한다는 건가요? 잘 이해가 안 되는데요.”



“영어 문장을 외울 때, 그냥 외우기보다는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정확하게 인식하면서 말을 해야겠죠? 그렇지 않으면 단순히 외우기를 위한 외우기가 되어 버릴 수가 있어요. 얼마 전에 배운 패턴에서 배운 문장 아직 기억하시죠? ‘요즘은 취직하기가 어려워요’ 그리고 ‘전 곧 결혼할 계획이에요.’ 두 문장 영어로 해보시겠어요?



“첫 번째 문장은 It’s hard to get a job these days. 두 번째 문장은 I’m planning to get married soon. 이거 맞죠?”



“잘 하셨어요. 열심히 공부한 보람이 있네요. 그럼 배운 문장을 조금 섞어서 물어볼게요. ‘요즘에는 결혼하기가 어려워’는 영어로 뭐라고 하면 될까요?”



“음… 그게… 갑자기 생각이 나지 않는데요. 잠시만요… 어려운 건 아닌데 바로 생각이 나지 않네요.”



“바로 그거예요. 마치 기계적으로 구구단을 외우는 거랑 비슷한 거라고 할 수 있어요. 문장을 조금만 바꿔도 기억이 나지 않고 말이 안 나오는 현상이 나타나는데요. 이건 기계적 암기를 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볼 수 있어요. 잰잰님이 무슨 말을 하는지 정확하게 알면 조금 버퍼링이 걸리더라도 영어로 말을 할 수 있어야해요. 그런데 기계적 암기를 하는 바람에 그냥 처음부터 줄줄 외우는 것밖에 안 되는 거예요.”



“그런 거였군요. 알았어요! 그럼 기계적 암기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거죠?”



“일단, 전에 말한 감정이입을 충실하게 실천하는 것이 좋아요.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인식하지 못하고 말하면 기계적 암기가 될 수 있거든요. 또 하나 기계적인 영어문장 암기를 피하기 위한 효과적인 방법이 있어요. 어떤 문장이 정말 외워지지 않는다면 이 방법을 사용해보는 것을 추천해 드릴게요. 우선 조금 쉬었다가 얘기해 봐요.”



코치재원의  추가조언

개념과 의미를 각인시킨다는 것


공부에 쏟는 시간과 열정만큼 충분한 실력 향상을 이루지 못하는 학습자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안타까운 것 하나가 바로 기계적 암기 습관입니다. 저 역시 그대로 시행착오를 경험했기 때문에 안타까움이 더욱 크게 느껴지곤 합니다.



대체적으로 초보학습자들은 자신이 익혀가는 문장이나 대사를 열심히 외우기는 합니다. 하지만 정작 그 문장을 자신의 언어로 완전히 받아들이는 과정은 생략하곤 하는데요. 학습자 분들께서 꼭 생각해 보시고 자신도 그런 실수를 반복하는 것 같으면 당장 고치는 것이 좋습니다.



밑 빠진 독에 물붓기라는 말이 있습니다. 무언가를 채우려면 일단 무작정 부어 넣기 전에 담을 그릇의 상태를 점검하고 채울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기계적 암기는 이런 밑 빠진 독에 물붓기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아무리 많은 문장을 외웠다고 하더라도 그 말의 의미를 깊게 체화시키지 않은 상태에서 하는 암기는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금방 잊어버리게 됩니다.



문장을 외워서 말을 할 때는 항상 무슨 말을 하는지 정확하게 인식하고 말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말을 뱉는 과정에서 말의 의미와 언어적 규칙을 감각적으로 체득할 수 있습니다.



아마 도전을 시작하시는 분들 중 많은 분들이 ‘나는 당연히 그렇게 하고 있는데?’ 하는 생각이 드실 겁니다. 하지만 그렇게 자신하지 마십시오. 상당히 많은 공부를 통해서 많은 문장을 외웠다는 학습자들도 간단한 테스트를 해보면 기계적 암기를 해왔던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짧은 문장을 열심히 외워도 조금만 지나고 나면 바로 생각이 안나는 경험을 해 보신 적 있나요? 그렇다면 그 영어문장을 외울 때 진짜 언어로 받아들이면서 외운 게 아닙니다. 그저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활자나 소리의 의미를 잠깐 생각만 해 본 후, 기계적으로 암기한 것일 뿐입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한국어로 실험을 해보겠습니다. 여러분들도 직접 해보시기 바랍니다. 

“넌 술을 왜 그렇게 퍼마시는지 모르겠다. 아마 술 못 마셔서 죽은 귀신이 붙었나 봐.”



평소에 쓰기 쉬운 이 문장을 한번 외워보도록 하세요. 여러분들이 이 문장을 외우려고 하면 문자나 말의 구조도 생각하지 않고 바로 외울 수 있을 겁니다. 오직 문장이 말하는 바, 즉 문장의 의미에만 초점을 맞추게 될 텐데요. 우리의 모국어인 한국어인데다가 생활에서 아주 많이 쓰이는 낯익은 단어들로만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한두 번 가볍게 듣기만 해도 쉽게 외우고 기억할 수 있을 겁니다. 어떤 상황에서 어떤 감정으로 말하고 있는지 순식간에 떠오르고 그 기분을 느낄 수 도 있을 겁니다. 이렇게 의미를 아주 확실하게 각인시키고 각 단어와 문장을 외우면 전혀 반해서 말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일주일 후에 정확하게 또는 비슷한 어휘와 구조로 말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 신문에서 발췌한 문장 하나를 외워보도록 해 봅시다.

이런 조치는 여신전문금융업법 개정으로 무이자할부에 들어가는 마케팅 비용을 카드사와 가맹점이 함께 부담해야 하기 때문이다.



어떤가요? 상대적으로 외우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 물론 이런 경제 용어에 익숙한 사람들이라면 쉽게 외울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평소에 이런 경제 용어와 동떨어진 삶을 사는 분들은 이 문장을 외우려면 꽤 공을 들여야 합니다. 그런데 대충 어떤 말인지 감을 잡고 당장은 외웠다고 하더라도 일주일 정도 후에 다시 얘기해 보라고 하면 어떤 현상이 벌어질까요? 일단 이 문장에 들어가 있는 전문용어가 생각나지 않겠지요? 그리고 그 용어가 의미하는 바를 정확하게 모르니 비슷한 구조와 의미로 말 자체를 하기도 힘이 들게 됩니다.



우리말이라도 익숙하지 않고 평소 접하지 않은 것을 듣거나 읽으면, 의미를 ‘이해’ 할 수 있는 것과는 상관없이 외워서 따라 말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또 여러 번 계속해서 반복한다 해도 생각만큼 깊이 있게 각인이 되질 않게 됩니다. 한 마디로 잘 외워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럼 이 문장을 외우고 자연스럽게 말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기계적으로 문장이나 소리 자체를 암기하는 것이 아니고 깊이 있게 체화해서 자신의 언어로 받아들일 수 있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단순히 여러 번 듣고 따라하면 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일단 각 단어의 의미를 아주 깊이 있게 이해해야 합니다. 또 전체 문장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개념이 쉽게 이해되고 바로 바로 떠오를 수 있도록 문장의 의미를 정확하게 인식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 이후에 여러 번 반복해서 사용해 보면서 완전히 자신의 언어로 만드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영어를 포함한 모든 외국어도 한 문장 한 문장 익혀갈 때 이런 똑같은 과정을 거쳐야만 합니다. 모국어인 한국어라 하더라도 모르는 단어와 개념으로 이루어진 문장은 기억하기가 쉽지 않은데, 하물며 체화의 정도가 근본적으로 다른 외국어는 말 할 필요도 없겠지요.



단순히 문장을 읽고, 소리를 듣고 나서 의미를 대충 이해하는 수준에서 외우는 것은 실제로 말하기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시간이 조금 더 걸리더라도 처음 익힐 때 확실하게 자신의 언어로 만드는 것이 좋습니다. 각 단어와 전체 문장의 의미를 완전하고 깊이 있게 각인시키는 과정을 꼭 거치기 바랍니다.



기계적으로 외우기만 한다면 공부한 만큼의 효과를 보기 어려운 것이 언어 공부입니다. 의미를 정확하고 뚜렷하게 각인시키면서 외우자! 절대로 잊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