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06) 이렇게 하면 문장이 2배로 빨리 외워진다고요?


“그냥 외우면 되는 줄 알았는데... 더 효율적인 방법이 있었군요. 모든 문장을 기계적으로 암기하면 너무 비효율적일 것 같아요.”



“물론이죠. 효율적인 학습을 위해서는 이 부분은 특히 신경 쓰는 게 좋을 거예요.”



“그럼 기계적인 암기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이 도대체 뭐에요?”



“음... 그건 바로, 우리들의 모국어인 한국어를 전략적으로 사용하는 거죠.”



“응? 한국어를 사용한다구요? 그게 무슨 말이죠? 영어를 가르치는 유명한 강사들이 한국어는 절대로 쓰지 말라고 했던 것 같은데요. 영어 뇌를 만드는데 방해된다고 말이죠.”



“저도 처음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이게 뭔가?’ 싶었어요. 그런데 차근차근 원리와 이유를 들어보니 그럴 듯한 거예요. 그래서 속는 셈 치고 한번 해 봤죠. 그랬더니 어땠는지 아세요? 완전히 기대 이상이었어요. 공부를 하는 족족 머릿속에 들어오고, 한번 외운 건 오래 지나도 거의 까먹질 않게 됐어요. 많은 분들이 경험해 본 내용이니 한번 속는 셈 치고 한국어를 적극적으로 사용해 보세요.”



“설마... 사전도 영한사전은 보지 말고 영영사전만 보라고 하던데, 도대체 어떤 방식으로 한국어를 사용한다는 거예요?”



“제대로 사용하면 한국어보다 강력한 외국어 습득도구가 별로 없어요. 방법도 생각보다 쉽고 간단해요. 실제로 전 세계의 다중언어 구사자들은 모국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외국어를 습득하고 있거든요. 다시 한번 말하지만 자신의 모국어는 사용하기에 따라서 큰 무기가 될 수 있어요.”



“그럼 구체적인 방법을 알려주세요. 어떤 식으로 우리말을 활용하면 되는 거예요?”



“의외로 간단해요. 한 마디로 말하면 ‘이해한 의미를 네 자신에게 가르쳐라’라고 할 수 있어요.”



“나 자신을 가르치라고요? 그건 또 무슨 말이죠?”



“가르치면서 배운다는 말이 있어요. Learning By Teaching이라는 말로도 많이 알려져 있는데요. 우선 잰잰님이 알고 있는 무언가를 누군가에게 가르쳐 준다고 생각해 보세요. 확실하게 이해하지 못한 것들을 가르쳐 줄 수는 없겠죠?”



“당연하죠. 사기꾼 소리 들을 일 있어요?”



“그런데 자신이 확실하게 이해하는 수준과, 남들에게 설명해 줄 수 있도록 완전히 자기의 지식체계로 자리 잡는 것과는 분명히 차이가 있어요. 후자 쪽이 훨씬 단단하다는 얘기죠. 아이러니한 건 불완전했던 지식도 남들에게 설명을 해주다 보면 자연스럽게 완전한 지식으로 다져진다는 거예요.”



“그건 저도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조금 느껴본 적은 있어요. 그런데 그거랑 영어를 공부할 때 한국어를 활용하는 거랑 무슨 상관이예요?”



“백문이 불여일견이죠! 영어문장 하나를 가지고 일단 한번 해볼게요. 지금부터 제가 말하는 영어대사를 잘 듣고 그대로 말해 보세요. He was an industrial engineer who worked seventy hours a week for a company that made ladders. 잘 들었죠? 한 번 그대로 말해 보세요.”



“He was an ...음...엔지니어 후 웤.... 음.... 너무 어려운데요? 한 번 듣고 그대로 말을 해요… 무슨 뜻인지도 바로 해석이 안 되는데 말이에요.”



“어렵죠? 그럼 제가 천천히 또박 또박 얘기해 드릴게요. 잘 듣고 따라해 보세요.”



코치재원은 다시 한번 천천히 또박또박 말을 해 주고 다시 외워보라고 주문했고, 잰잰님은 전보다는 많이 좋아졌지만 역시 전체 문장을 정확하게 기억해서 말하지는 못했다.



“그래도 천천히 들으니까 기억이 조금 나는 것 같아요. 그래도 어려운 건 마찬가지인데요.”



“좋아요. 그럼 이제 이걸 그대로 따라해 보세요. ‘그 사람은 사다리를 만드는 회사에서 주당 70시간을 일하는 산업엔지니어였다.’ 어때요? 잘 들었죠? 이제 그대로 한국말로 말해 보세요.”



“그 사람은 사다리를 만드는 회사에서 주당 70시간을 일하는 산업엔지니어였다.”



“이건 영어보다 따라 하기가 훨씬 쉽죠?”



“당연하죠! 한국말로 하는 거고 어려운 말도 하나도 없으니까요.”



“바로 그거에요. 이 문장에서 잰잰님이 모르는 영어단어도 전혀 없었죠? 그리고 들을 때 무슨 말인지도 얼추 이해가 되었고요? 그런데 왜 말을 해 보려고 하니까 잘 기억이 나지 않고 자연스럽게 말이 안 나왔을까를 생각해 보면 되는 거예요.”



“그러게요. 들을 때는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은데 말로 해 보려면 왜 잘 안되는지 답답해요.”



“이유는 간단해요. 이 문장에서 사용된 단어의 의미와 문장이 만들어지는 구조가 한국어의 그것들만큼 깊숙하게 체화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에요. 자연스럽게 뱉어지는 수준이 아니고, 그냥 들었을 때 어렴풋이 의미가 이해되는 수준 정도로만 알고 있다는 얘기거든요.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두 가지 방법이 있어요. 첫 번째는 모두 알고 있는 것처럼 수없이 많은 반복을 통해서 깊숙하게 의미를 체화시키는 방법이예요. 마치 I love you 같은 문장은 완전히 체화되어 있는 말이라,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바로 의미가 이해되고 말로도 얼마든지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죠.”



“그러면 계속 무한대로 반복하는 게 정답이라는 건가요?”



“반복이야 많이 하면 할수록 좋죠. 그런데 현실적으로 이런 방법은 수많은 문장과 단어를 익혀야 하는 우리들한테는 조금 무리가 있어요. 그래서 한국어로 단시간 내에 의미를 의식의 세계로 깊숙하게 끌어 올리고 체화시키는 방법을 쓰는 거죠. 그게 바로 두 번째 방법, 즉 한국어를 전략적으로 활용하라는 이유인 거예요. 지금부터 이 문장에서 쓰인 단어의 의미를 순서대로 저에게 설명해 주세요. 제가 완전히 어린 아이라고 생각하고 알아들을 수 있도록 최대한 쉬운 말을 써 가면서 설명을 해 주는 거죠.”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잰잰님이 코치재원에게 설명해 준 내용은 다음과 같다.



“그 남자에 대해서 얘기하는 거니까 He, 옛날의 직업을 얘기하는 거니까 is가 아니고 was, 수많은 직업 중 한 가지인 일반적인 직업을 말하려고 하는 거니까 the 가 아니고 an industrial engineer, 이제 직업인으로서의 그 사람을 설명해 주는 말을 뒤에 넣으려고 who, 역시 주당 70시간을 일했던 과거의 얘기를 하고 있으니까 그냥 work 이 아니고 worked seventy hours a week, 회사에 소속된 상태에서 일하는 근로자라 for a company, 그 회사가 만드는 건 사다리 한 개가 아니고 여러 종류의 사다리들이었으므로 that made ladders.”



“잘하셨어요! 이제 이 문장의 의미가 완전히 정확하게 잰잰님의 머리에 인식되었을 거예요. 그럼 이제 다시 그 의미와 각 단어들이 떠오르게 만드는 이미지를 기억하면서 천천히 영어로 얘기해 보세요.”



“He was an industrial engineer who worked seventy hours a week for a company that made ladders. 와! 진짜 생생하게 기억이 나네요? 이게 어떻게 된 거죠? 제가 영어문장을 이렇게 쉽게 외우는 편이 아닌데요? 이렇게 긴 문장을 바로 말해본 것은 처음이에요.”



“그건 잰잰님이 한국어로 단어 하나하나를 순서에 따라서 친절하게 설명을 하는 과정에서 각 단어나 문법적 요소들이, 잰잰님의 지식체계로 잠깐 동안이지만 깊게 각인되었기 때문인 거죠. 지금은 거의 완전한 수준으로 기억하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잊어버리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일단 이 수준까지 왔을 때 다시 의미를 생각하면서 영어로 말을 해 보는 과정을 꼭 밟아야 해요. 이 과정을 조금만 반복해도 여기서 사용한 단어와 문법적 요소, 그리고 문장 구조는 잰잰님의 것으로 완전히 체화가 될 거예요.”



“아! 신기해요. 또 말해도 그대로 기억나고 그러네요. 이게 진짜로 한국어를 활용했기 때문이란 말이죠? 알고 보니 정말 간단한 방법인데, 이걸 왜 몰랐을까요?”



“정확하고 완전한 한국어 문장으로 번역을 하지 않아도 된다! 한국어로 의미를 하나하나 천천히 설명해 주는 것만으로 영어문장의 의미를 깊숙하게 이해하고 쉽게 익혀 갈 수 있다! 이런 말들의 의미를 이제는 무슨 말인지 확실히 알겠죠? 하다 보면 얼핏 쉬워 보이는 단어나 문장들은 귀찮아서 그냥 넘어가게도 될 거예요. 또 정확하고 매끄러운 한국어로 이해가 아닌 ‘번역’을 하려는 습관도 생길 거고 말이죠. 하지만 절대로 번역을 하려고 노력하지 말고, 의미에 대한 완전한 ‘이해’를 목표에 두고 꾸준하게 연습을 해보세요. 영어뿐만 아니라 외국어를 자신의 언어로 받아들이는 것이 얼마나 쉬운 일인지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될 거예요.”



코치재원의 추가조언


자신의 실력과는 무관하게 무조건 영영사전을 이용하는 것은, ‘처음 만나는 개념’을 ‘역시 전혀 모르는 말로 해주는 설명을 듣고 배우는 것’과 같습니다. 불가능한 것은 아니겠지만 초보자들에겐 엄청난 시간적, 양적 비효율이 발생하게 됩니다. 어떤 개념을 지칭하는 새로운 단어의 소리와 활자를 기억하기 위해서는, 그 개념 자체를 한국어로 설명해 주면서 의미를 받아들이는 것이 훨씬 빠르고 확실합니다.



당연한 얘기이겠지만 말을 할 때는 한국어를 사용하지 않을 겁니다. 아니 사용할 필요가 없습니다. 한국어로 개념을 확실하게 각인시킨 단어나 표현은 한국어를 사용하듯이 편하게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영영사전의 압박에서도 해방될 수 있습니다. 영한사전에서 설명이 조금 부족하다 싶을 때 필요해서 찾아볼 수는 있지만, 의무적으로 영영사전을 써야 한다는 부담감은 더 이상 들지 않을 겁니다. 당연히 학습효율도 기대 이상으로 높아지게 되죠. 



여기서 주의할 것은 ‘번역’과 ‘이해’의 차이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오랜 습관 때문에 완벽한 한국어 문장으로 ‘번역’되어야 한다는 마음을 쉽게 버리지는 못합니다. 이 때는 어린아이에게 가르쳐준다고 생각해보세요. 



그냥 편안하게, 하지만 정확하게 의미를 ‘이해’하라. 

이해한 대로 받아들이고 그 내용을 바탕으로 내가 알고 있는 한국어로 자기자신에게 설명해 줘라.

 꼭 완벽하게 해석할 필요 없이 앞 뒤 문맥에 맞게 어린아이에게 설명하듯 자연스럽게.



이 요령을 익히게 되면 예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변화를 경험할 수 있을 겁니다. 어떻게 보면 아주 단순한 방법인데 그 차이는 상상 이상입니다. 어휘와 문장의 의미를 받아들이는 속도와 강도가 예전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좋아지기 때문입니다.